![미술과 프로그래밍 그리고 이해](https://img1.daumcdn.net/thumb/R750x0/?scode=mtistory2&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RkHFS%2FbtsEEy5oWPm%2FM2O5r8KI8CKqTIM1PYSvJ0%2Fimg.png)
해석과 의미 전달의 현대 예술
필자는 예술에 대해 논 할 수 있는 자격증, 예를 들면 대학 졸업증이라거나 미술인임을 표현하는 증서와 같은 것이 없다. 그저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일반인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주변에 미술을 하는 지인들이 있어 이야기를 종종 듣곤 하는데, 들려오는 소리는 하나같이 미술은 해석 중심이라는 것이었다.
이 작품도 보기 좋고 저 작품도 보기 좋은데, 저 작품에 담긴 의미가 대단하다면 더 좋은 작품이라 평가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보기 좋은 작품에 의미가 없고, 보기 좋지 못한 작품에 의미가 있을 때는 보통 후자를 고평가한다. 요즘같은 시대에서 보기 좋은 작품은 일반인도 만들 수 있기에 그 의미가 더 중요하게 평가된다. 어떤 의미를 담았는가,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가, 단순히 보기 즐거운 것이 중요한게 아니라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되었다.
이해못하다니 예술적 교양이 떨어지네요
문제는 전달을 어떻게 하는지다. 작가들은 작품에 뜻을 숨겨놓는다. 이는 작품을 관람하는 사람들이 한 번에 알 수는 없지만, 조금 생각하면 알 수 있게끔 설계가 되곤 한다. 마치 반려동물들과 간식놀이를 하는 것 처럼, 여러 개의 주머니가 달린 헝겁에 간식을 넣어놓고 찾게하는 것과 비슷하게 작품을 설계한다.
하지만 때로는 작가들은 찾기 굉장히 어렵게 의미를 넣어놓는다. 상당히 추상적으로 풀어내거나, 몇 중첩으로 생각을 해야 알 수 있거나, 혹은 자신만이 느낄 수 있는 무언가를 넣어놓는 방식을 택한다. 이에 대해 작가가 설명을 해준다면 대중도 어느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사실 이해라기 보다는 받아들이는 것에 가깝지만 작가의 의도를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가끔 에고가 넘치는 몇 작가들은 '이것도 이해 못 해? 수준차이가 심각한걸' 이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이런 작가들은 대체로 상업적인 예술에 굉장히 반감을 가진다. '팔기 위해 존재하는 예술은 예술이 아니다.', '예술은 자본주의에 타락해서는 안된다.' 라는 주장을 내세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자. 예술이 자본주의와 엮이지 않은 적이 있었는지 말이다. 예술은 늘 자본주의와 함께 해 왔다. 물론 자본에 얽매이지 않은 예술도 존재했다. 다만 그런 상황은 예술가 본인이 자본가였을 뿐이다. 예술 작품도 결국엔 상품이다. 그것을 팔고자 하지 않았다고 해도 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만으로 상품이다.
예술은 누군가가 이해해주고 봐주는데서 그 가치가 드러난다. 하지만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그저 소수만이 이해하는 난해한 작품을 내세우고 이를 통해 대중을 깎아내리는 것은 단지 그 작가의 열등감이 작품에 녹아들었다고 할 수 밖에 없다. '내 작품을 이해하지 못하다니, 대중들은 우매해. 이걸 이해하는 나는 대중보다 위에 있는 존재다.' 아니 정확히는 '위에 있고 싶어'에 가깝다.
나만 이해 가능한 코드
초기의 프로그래머들도 위의 에고가 강한 예술가와 같은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남들이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코드를 짤 수 있는 것이 훌륭한 프로그래머의 덕목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짠 난해한 코드를 주고 이해하지 못하는 개발자들을 실력이 없다고 비난했다고 한다. 과거엔 코드를 짤 때 오로지 나만이 이해하고, 나만이 고칠 수 있는 코드를 짜는 것이 훌륭한 프로그래머이고 똑똑한 프로그래머였다.
하지만 이는 시대가 변하면서 인식이 바뀌었다. 남이 이해할 수 없는 코드는 협업에 있어 최악의 결과물이라는 것으로 말이다. 만약 내가 나만 이해가능한 코드를 짜고 휴가에 가버리게 되면 어떻게 될까. 내가 짠 코드가 완벽하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정말 하나도 없을 수 있을까. 몇 번은 가능해도 항상 가능하진 않을 것이다. 그렇게 문제가 발생했을 때 프로젝트는 내가 돌아오기 전 까지 마비된다. 이래도 내가 유능한가. 오히려 일을 망치는 주범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의 현학으로 모든 것이 망가질 수 있으니 말이다.
이해를 못하게 하는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해할 수 있는 코드를 가진 소프트웨어는 오래동안 유지보수가 된다. 그 코드를 고친 사람이 이해할 수 있게 고쳤다면 말이다. 계속해서 이해할 수 있게 코드를 짜고, 수정하는 것을 반복하면 그 명맥은 계속해서 이어지게 된다. 프로젝트 볼륨이 커지게 되면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리겠지만, 충분히 문서로 설명을 해줄 수 있고 그 문서를 보고 필요한 부분만 쉽게 알아볼 수 도 있다.
물론 내가 말한 것이 쉬운 것은 아니다. 아무리 쉽게 코드를 짜려고 노력해도 약간만 볼륨이 커지면 순식간에 짧은 시간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코드로 돌변해버린다. 하지만 누군가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이정도 위력이다. 인력이 교체되어도, 프로젝트에 처음 참여한 인원이 아니더라도 코드를 고칠 수 있고, 어떤 맥락인지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의 위력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해를 한다는 것은 남에게 전달할 수 있다는 것과도 같기에 계속해서 전승된다.
예술도 마찬가지다.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오래 기억된다. 이해하기 어려웠던, 난해한 코드를 봤을 때의 충격은 신선하다. 허나 그 충격은 어느정도 큰 게 아닌 이상 기억에 오래남기 힘들다. 지금 당장 이제껏 봤는 난해했던 작품중 하나를 떠올려보라고 하면 떠올릴 수 있을까. 자주 안봤으니 못떠올린다는 말을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왜 자주 안봤을까. 쉽게 이해되는 작품은 매일 같이 보고, 볼 수 있지만 쉽게 이해되지 않는 작품을 매일 볼 수 있을까. 아니 보고 싶을까. 이해라는 것의 위력은 이정도다. 매일 봐도 지겨울 순 있지만 머리는 아프지 않게 하는 접근성을 보여준다.
우리가 흔히 아는 클리셰들도 마찬가지다. 왜 뻔하다고 생각이 들까. 자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자주 보일까. 그것은 이해하고 사용하기 가장 쉽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흔치 않은 클리셰에 대해 말해보라고 해보면 아까와 같은 말을 할 것이다. 자주 보이지 않으니까. 그렇다면 충격적인 클리셰가 있었는가. 있었다고 해도 추상적으로 기억이 난 후에 작품 이름이 기억날 것이다. 쉽게 이해될 수록 쉽게 이해한다. 모든 것이 그렇다. 코드도 그렇고 예술도 그렇고 말이다. 남들이 내가 만든 것을 기억해줬으면 한다면 뭐든 이해할 수 있는 범주에서 체계를 만들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잊힌다.
물론 난해한 것도 필요하다. 발전을 위해서라면 어려운 것도 해야한다. 난해한 것을 아무나 할 수 있다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난해한 것을 해냈다고 당신이 남들을 우매하다고 말 할 정도로 우월한 것도 아니며, 남이 이해하지 못하는, 적용하지 못하는, 사용하지 못하는 난해함은 그저 혼돈일 뿐 아무것도 아니란 것을 말이다. 세상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다.
마치며
이번 글은 친구와 대화를 하다 예술의 이해에 대한 주제가 나와 작성하게 되었다. 남들이 자신이 생각한 것을 자신은 이해했으니 우월하다는 듯 말하는 에고가 강한 예술가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던 도중 프로그래머와도 연관이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하여 글을 작성하게 되었다. 결국엔 예술도 프로그래밍도 내 결과물을 보는 사람을 이해시키는 것인데 왜 예술에는 그런 생각을 가지는 사람이 있는 것일까. 내재된 열등감의 반영일까. 남들보다 우월하고 싶은 자신의 욕망을 숨기지 못한 것일까. 남들을 이해시키지 못한다는 것은 자신도 이해못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일까.
천재들은 가끔 그런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사고가 너무 뛰어나서 자신이 생각한 것을 이해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는 앞의 예시와는 다르다. 어쨌거나 그 천재들이 생각해낸 것은 실제로 들어맞지 않는가. 증명해냈지 않은가. 허나 증명하지 못하면 그것은 자신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 어떤 것들보다도 이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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